1966년, 런던의 음악계는 뜨거웠다.
싱글 히트곡 중심에서 앨범 지향적인 록으로 변화하는 시기,
그 중심에는 '크림(Cream)'이라는 슈퍼 밴드가 있었다.
이들은 단순한 밴드가 아닌,
블루스와 사이키델릭 록을 융합한 새로운 음악의 '현상'이었다.
크림의 탄생은 순탄치 않았다.
멤버들은 각자 깊은 음악적 역사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만큼 불안한 시작이었다.
드러머 진저 베이커와 베이시스트 잭 브루스는 과거 그레이엄 본드 오거나이제이션에서 함께 활동했지만,
둘 사이의 불화는 깊었다.
베이커가 브루스를 칼로 위협하는 일까지 벌어졌을 정도였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었다.
베이커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과 만나 새로운 밴드 결성을 모색했고,
클랩튼은 브루스를 영입하고 싶어 했다.
베이커는 망설였지만, 결국 세 사람은 음악적 재능에 대한 존경심으로 다시 뭉치게 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크림은 '최고 중의 최고'라는 의미를 담아 스스로를 '크림(Cream)'이라 명명했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세 명의 뮤지션은 놀라운 시너지를 발휘하며 런던 클럽 무대를 뒤흔들었다.
1966년 여름, 크림은 데뷔 싱글 'Wrapping Paper'를 발표하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곧이어 발표한 'I Feel Free'는 영국 차트 11위에 오르며 성공을 거두었고,
사이키델릭 록의 초기 대표곡 중 하나로 평가받게 되었다.
같은 해 12월, 크림은 데뷔 앨범 'Fresh Cream'을 발표했다.
블루스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사이키델릭 록의 요소를 가미한 독특한 사운드는 평단과 대중의 찬사를 받았다.
이어 미국 진출을 위해 애틀랜틱 레코드와 계약을 맺었지만,
애틀랜틱의 수장 아흐메트 에르테군은 크림의 새로운 음악 스타일에 불만을 표시하며 에릭 클랩튼을 리드 보컬로 내세우려는 시도를 했다.
하지만 밴드는 이를 거부하고,
결국 펠릭스 파팔라디를 프로듀서로 영입하여 자신들의 음악적 색깔을 지켜냈다.
1967년 11월, 크림은 두 번째 앨범 'Disraeli Gears'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Sunshine of Your Love'를 비롯하여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키며 사이키델릭 록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이어 1968년 8월에는 스튜디오 녹음과 라이브 공연을 함께 담은 앨범 'Wheels of Fire'를 발표하며 라이브 앨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특히 라이브 버전의 'Crossroads'는 에릭 클랩튼의 기타 연주의 진수를 보여주는 명곡으로 꼽히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영광의 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멤버 간의 불화와 갈등은 점점 심해졌고, 결국 1968년 크림은 해체를 선언했다.
짧지만 강렬했던 크림의 음악 여정은 막을 내렸지만,
그들이 남긴 유산은 록 음악 역사에 깊이 새겨졌다.
크림은 블루스 록, 사이키델릭 록, 하드 록 등 다양한 장르에 영향을 미쳤으며,
록 밴드의 개념을 재정립했다.
특히 즉흥 연주와 솔로 연주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후 등장하는 수많은 록 밴드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비록 크림은 사라졌지만,
그들의 음악은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들의 혁신적인 사운드와 열정적인 연주는 오늘날까지 많은 음악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으며,
록 음악의 황금기를 다시 한번 느껴볼 수 있게 해준다.
크림의 음악은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 록 음악의 역사를 빛낼 것이다.